[특영반/테오도르하인리히/단편] 피그말리온(2)
2편. 참고로 독일은 세계에서 운전면허 취득나이가 가장 어려서 만 15세라 합니다. 그래서 설정상 테오도르는 만 16세, 하인리히는 17세로.
피그말리온 (2)
간단하게나마 식사를 준비하는 쪽은 테오도르였다.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된 이후, 소소하게 굳어진 몇가지 생활규칙 중 하나였다. 재킷을 벗어 걸고 바로 싱크대 앞에 서며 테오도르는 생각했다. 함께 살게 된 이후라. 얼마나 됐더라. 아버지가 통화하며 '벌써 3년'이라고 하는 말을 얼핏 듣고는 쓴웃음 지었던 적이 있다.
3년이었다. 3년이나 지났다. 전기 인덕션을 켜며 테오도르는 모래알갱이를 씹듯 숫자를 헤아렸다. 구질구질한 지난 실패한 가족의 잔해를 끌고 와 현재의 가족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팽개친 후 관심 끊은 인간에게 3년은 별것 아니겠지. 그러나 거부권도 없이 그 결과물을 온몸으로 직접 맞은 쪽에게는 전혀 다른 문제다.
어린아이에게 3년이란 길고 긴 시간이었다. 슐리만 가의 외동으로 13년을 커 온 아이가 한번 무너졌다가 하인리히의 동생으로 자기를 다시 만드는 끔찍하게 긴 시간.... 테오도르는 이제 3년 전이 기억도 나지 않았다. 3년은 영원한 터널로 이어져서 그 끝에 가물거리는 기억이 마치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시간을 함께 버틴 사람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테오도르의 일상을 부순 장본인인 하인리히였다.
"저녁 먹을 거지? 안 먹어도 먹일 거지만."
큰소리로 복도 건너편을 향해 일방통보를 하며 테오도르는 달군 팬에 냉동콩과 아스파라거스, 당근과 닭고기를 쓸어넣었다.
'전 여기 남겠어요.' 그렇게 대답했을 때 어머니 얼굴... 그건 또 언제였지. 절대적인 자기 편이라 믿었던 아들에게 배신당했다는 표정. '그래, 너도 결국 그 인간하고 똑같구나. 그 피가 어디 가겠어. 잘해 봐. 선한 슐리만의 아들.'
어머니의 배신감과 분노는 정당하다. 어머니가 깔끔하게 짐을 챙겨 13년 간 함께 해 온 자신의 인생에서 걸어가버리는 걸 보며 테오도르는 주먹을 지그시 쥐었다. 하지만 무터, 무터는 내가 없어도 괜찮잖아. 무터는 내가 필요하지 않잖아. 하지만....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기 익는 냄새가 올라왔다. 테오도르는 익숙하게 휘저으며 소금과 허브를 뿌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가 절실히 필요하지.
하인리히는 1년 간 홈스쿨링으로 언어와 기초지식을 하나하나 배웠다. 꼭 그룬트슐레(초등교육) 학생처럼. 전혀 진척이 없었다면 아버지에겐 또다른 무정한 계획이 있던 모양이지만... 다행히 하인리히는 어설프게나마 적응해서 김나지움에 편입할 수 있었다. 나이는 테오도르보다 한살 많았지만 2년 뒤쳐진 과정이었다.
'그리고 난 아직도 다 큰 애보기 담당이고.'
조리스푼으로 큼직한 닭고기를 떠서 맛을 본 후 소금을 좀더 털어넣고 불을 껐다. 이제 방에 틀어박혀 있을 놈을 끄집어 내 와야지. "하인리히, 빨리 나와서 먹...!" 소리지르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언가 확 덮쳐왔다.
달큰한 냄새, 그리고 하인리히의 숨결이 얼굴을 훅 가로질렀다. 소리도 없이 닥쳐온 그가 테오도르의 등뒤에서 어깨를 와락 끌어안고 있었다. 온 몸무게를 실어 매딜리듯 하는 바람에 테오도르는 하마터면 부엌 바닥에 나뒹굴 뻔했다.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불쑥 나타나선!"
"방심하면, 혼내줘야지."
킥킥대는 웃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약간 땀에 젖은 붉은 머리칼이 느껴졌다. 테오도르는 그를 휘감고 있는 냄새를 알아차리자 못마땅하게 손등으로 그 뺨을 툭 쳤다.
"잘 한다. 식전부터 피워대고. 칭찬해줄까."
"알 게 뭐야. 네가 만든 맛없는 밥이 무슨 상관이라고."
"맛이 없어요? 네가 미각치고요."
하인리히는 다시 크게 한숨을 뱉어내며 테오도르의 어깨 위에 턱을 올려놓았다. 온몸의 긴장이 나른하게 풀려있는 게 그와 맞닿은 등 전체를 통해 전해진다. 무릎 아래로는 아예 흐느적거리며 테오도르에게 감겨있다시피 하다.
한대 피운 후의 하인리히는 조금 기분이 좋아져선 실없이 웃고 만사 귀찮다는 몽롱한 눈빛을 했다. 평소엔 벌레보듯 하던 테오도르에게 자기가 먼저 와서 감기기도 했다. 그 몇십분 동안이 유일하게 늘 새파란 날을 바싹 세우며 살던 그가 느슨해지고 무뎌지는 시간이었다. 그런 하인리히는 좀더 참아줄 만한 인간이었다. 본인으로서도 꽉 졸려있던 숨통이 약간이나마 트이는 유일한 통로이리라.
이 인간이 평소에도 이만큼 뻔뻔하고 느긋한 성격이었다면 좀더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테오도르는 한숨을 쉬었다.
"나도 한대 피울까."
하인리히가 계속 킬킬대며 엉겨붙는 바람에 그 크고 무거운 놈을 질질 끌다시피 해서 자기 방까지 가야했다. 서랍을 열던 테오도르의 얼굴이 문득 굳었다.
"너, 내 것까지 손 댔냐?"
테오도르는 하인리히를 떼어내고 성큼성큼 걸어가 그의 서랍을 벌컥 열었다. 비어 있다. 분명 지난번에 절반 나눠서 쥐어줬는데 죄 없어지고 자기 몫도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하인리히는 실실 웃으며 문설주에 기대서서 테오도르를 지켜보고 있었다. 좀전까지 게슴츠레 하던 눈이 비웃음을 품고 붉고 차게 빛났다. '그렇다면 어쩔래?'라고, 명백하게 부딪쳐오는 도발.
화를 내면 안 된다. 화를 내면 테오도르의 패배가 되는, 교활한 게임이다. 실제로도 겨우 이 정도는 감정을 건드리는 축에도 들지 않았다. 테오도르는 하인리히의 두 눈을 추궁하듯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하인리히! 그러지 말랬지. 과해봤자 좋을 리 없잖아? 가끔 긴장 풀라고 구해다줬지, 이대로 순조롭게 크리스탈, 브라운슈가, 크랙, 애시드... 길바닥에 뒹굴다 끝장나는 약쟁이 인생 예약한다 환장했지?"
테오도르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하인리히가 신경질적으로 쳐냈으나 테오도르는 끈기있게 거리를 좁혀, 마침내 하인리히의 양뺨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아직은 자신보다 하인리히의 키가 커서 시선이 살짝 어긋난다. 그라스(Gras=weed) 효과까지 더 해 비현실적으로 유쾌하고 또 살벌함을 뿜는 붉은 눈. 창백한 뺨에 열기로 도드라진 주근깨, 날카롭게 튀어나온 광대뼈... 빌어먹을, 어떻게 이렇게나 아버지와 똑같지.
"어이, 내 말 듣고 있어?"
"머리까지 고장난 줄 알아? 시끄러워, 망할."
"말해 봐. 무슨 일 있지? 너 요즘 이상해. 숨길 생각 말고 말해."
싫어도 혈육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개자식이 조금이라도 딴판으로 생겼으면 진작에 어머니와 함께 도망쳤을 텐데. 하인리히는 입을 꾹 다문 채 몸을 비틀어 벗어나려 했으나, 테오도르는 그의 얼굴 뿐 아니라 뒷머리칼 새로 손가락을 억세게 박아넣었다. 목소리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말해."
잠시 숨조차 얼어붙는 긴장이 둘의 몸을 타고 흘렀다. 하인리히는 자신을 집어삼킬 듯한 테오도르의 푸른눈을 내려다보았다. 곧 피식, 웃는다.
"짜증나.... 혼자 진지 빨긴."
늘 폭발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짓누르다가, 하인리히는 갑자기 풀어버리곤 했다. 휘청거리다 털썩 주저앉고 싶을 만큼의 해방감. 테오도르는 간신히 맞받아쳤다.
"너나 센 척하지 마!"
저놈 수작에 말려들면 안 된다. 늘 고삐를 팽팽하게 쥐고... 테오도르는 마음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빨리 말이나 하세요. 지겨우니까."
"알았다, 썩을 놈. 그래. 요즘 좀 '보여'서 그런다, 왜."
"보인다고? 뭐 하루이틀 당한 것처럼 새삼... 응? 잠깐, 무슨 의미야?"
테오도르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하인리히가 허공에 대고 기분나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상하게 피곤해 보였다.
"어, 아주 악질이 하나 있다. 좀 더럽게 꼬인 놈이야. 얼마 전에 실수로 눈 마주쳐 버렸는데 그게 잘못됐는지 계속 따라붙네. 요즘 가는 곳마다 보여서 좀 그렇다."
"그럼 오늘 난리친 것도 그 때문이었어? 심각한 거 아냐? 그걸 왜 이제 말하고...!"
테오도르의 목소리에 약간 근심이 깃든 걸 알아차린 하인리히가 피식거렸다.
"동생 시늉 아주 능숙해졌네."
"시늉이 아니라, 이 청개구리 자식아. 그래서, 자세히 말해 봐. 많이 위험해? 뭔가 수를 써야 하지 않겠어?"
"말해봤자 네가 아냐. 됐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알아서 하긴 너 혼자 뭘...!"
소리치다 말고 테오도르는 입을 다물었다. 하인리히가 손가락을 하나 세워서 자기 입에 갖다대고 있었다. 그 손가락 뒤에서 입모양이 웃는 듯 벌어졌다.
"너, 내가 뭘 보는지 알아? 뭘 듣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어?"
테오도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따위 내가 알 게 뭐냐.
"...아니."
"그렇지? 안 보이는 주제에 입만 살았지. 어차피 여기서 내게 도움되는 놈은 하나도 없어. 너도 아무 쓸모없는 건 똑같아. 그러니까 좋은 동생 시늉은 여기선 접어둬. 도련님이 착하게 저녁 만들어주면 착하게 먹을게. 그 이상은 오지랖 떨지 마. 이따위 잡귀 한두번 본 거 아니니까 내버려두라고."
잠시 울컥했으나 테오도르는 분을 씹어 눌렀다. 냉정하게 보면 맞는 말이다. 유령 얘기 따위, 사실 믿지도 않는데 악령이니 뭐니 쫓기고 위협받는다 한들 실감이 날 리가. 단지 하인리히가 처음부터 금을 긋고 자신을 밀어낸다는 게 분할 뿐.
"그래서, 그걸로 해결이 나냐? 내가 모른 척만 해 주면 다 되는 거냐고."
"나도 몰라. 몇달, 어쩌면 몇년 걸릴 지도 모르지. 관심 끊고 피하면 제까짓게 살아있는 사람한테 뭘 더 어쩌겠어. 지금은 그게 최선이야.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 그만하자고."
하인리히는 눈을 찌르는 새빨간 머리를 쓸어올리며 귀찮은 듯 마무리했다.
"이제 됐냐? 네 맛없는 밥 먹어줄 테니 더 말시키지 마."
그리고는 너무 커서 구부정한 어깨를 한 채 먼저 부엌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맛없다고? 다음엔 진짜 맛없는 밥이 뭔지 보여줘야겠군." 테오도르는 코웃음을 치며 뒤따라갔다.
정말로 형편없는 건 네놈 거짓말이지. 사실 지금도 겁을 잔뜩 집어먹은 주제에. 테오도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텅 빈 서랍. 나는 그 서랍을 봤어. 그 안이 비어갈 수록 네 두려움이 대신 가득하게 들어차고 무거워졌겠지.
대체 얼마나 많은 서랍을 비운 후에야 넌 의지할 곳이 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까.
식사를 마친 후 아이스크림을 꺼내던 중이었다. 벌써부터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빈둥거리던 하인리히가 짧게 불렀다.
"전화."
바로 손 근처에서 울려대는 테오도르의 핸드폰을 건네줄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는 목소리였다. 테오도르는 설거지용 앞치마를 뭉쳐 그 얼굴에 던지고는 얼른 핸드폰을 채 들었다. 발신번호를 보자마자 그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하인리히는 앞치마 틈새로 놓치지 않았다.
"모니카!"
받아든 테오도르의 음성에 기쁨이 내비치고 있었다. 맑고 발랄한 웃음소리가 저편에서 터져나왔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눈부신 햇살을 드리우는 유일한 사람. 테오도르는 하인리히를 의식해서 등으로 가리듯 몸을 잔뜩 수그려서는 전화기 건너 들려오는 뭉툭한 소음 속 목소리에 소중하게 귀기울였다.
"아냐, 괜찮아. 응, 그래? 더크네 집에서 파티? 그래, 그럼 나도 지금부터 갈게. 두어 시간 어울리다가 너도 바래다주지 뭐. 그래, 십오분이면 도착할 거야. 응, 그래. 곧 봐, mein Schatz."
마지막으로 사랑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맞춤 소리를 내는 바람에 뒤에 늘어져있던 하인리히가 징그럽다는 얼굴로 경련했다. "mein Schatz 좋아하네! 얼어죽을." 그러거나 말거나, 날아갈듯 들뜬 표정이 된 테오도르가 휙 돌아보았다.
"자, 그렇게 됐으니 난 데이트다. 넌 혼자 집에서 썩고 있어라!"
"역겨우니까 빨리 꺼지기나 해!"
쿠션이 날아왔으나 테오도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다시 빗느라 부산을 떤 후 자동차 열쇠를 집어들고 나왔다.
"외롭지 않게 리모컨 두고 갈 테니, 방송 끊길 때까지 친하게 지내 봐. 잘 놀다올 테니 내 걱정은 말고."
"걱정 같은 소리! 아직도 안 꺼졌냐!"
이번엔 쿠션보다 더한 게 날아올 기세라 테오도르는 싱글거리며 문을 닫고 나섰다. 차를 몰고 10분 거리인 동급생의 집에선 작은 파티가 한창 달아올라 있었다. 녹색 미니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올려묶은 모니카가 테라스 창 건너로 기웃기웃거리다가 테오도르를 발견하자마자 달려나왔다.
"기다렸어, 테드!"
둘은 짐짓 점잔을 빼며 친구들 앞에서 서로 볼키스를 했다. 오른뺨에 한번, 왼쪽뺨에 한번, 다시 오른뺨. 친구들의 야유 속에서 모니카가 따뜻한 손으로 테오도르의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끌었고 곧바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요란하게 쿵쿵거리는 음악 속에서도 테오도르의 귓가엔 그녀의 목소리 뿐.
모니카는 테오도르의 인생에 하인리히가 나타나던 해에 만났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멍청하고 잔인한 신에게도 아주 약간은 공평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부모가 싸우거나, 하인리히가 말썽을 부려 병원에 실려가거나, 그저 테오도르가 전부 지긋지긋해질 때, 모니카는 자신의 부모에게 부탁해 그를 저녁식탁에 부르곤 했다.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빛나는 금발에 아무 거리낌 없이 미소짓는 헤이즐넛 빛깔의 눈동자와. 복잡하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집안에서 피신해 모니카의 곁에 있을 때만 테오도르는 청정한 공기에 둘러싸인 듯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몇번이나 그녀의 부드러운 어깨에 기대어, 너만이 내 안식처라고 중얼거렸던가.
"괜찮아?"
언제나 테오도르의 기분을 제일 먼저 알아채는 그녀가 묻고나서야 그는 이번에도 자신이 어깨가 뻣뻣할 만큼 긴장하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어른스럽게 빙긋 웃어보였다.
"널 보니 다 괜찮은 것 같네."
자정 전에 파티에서 빠져나와, 모니카를 옆에 태우고 테오도르는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여기서 그녀의 집까지는 채 십분 거리도 되지 않는데 그 사실이 새삼 너무 아쉬웠다. 일부러 느릿느릿 차를 모는 테오도르의 마음을 또 알아챈 모니카가 핸들을 쥔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가만히 포갰다.
"피곤해 보이네. 하인리히 혼자 두고 와도 돼?"
"그 자식도 언젠간 혼자 살아야지. 애도 아니니 괜찮아. 집안을 어지르지나 말았으면 좋겠네."
익숙하게 매끄러운 어조로 빠져나왔다. 그가 단둘이 있는 곳에서까지 하인리히를 끌어들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모니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 묻는 대신 짓궂게 웃었다.
"그래? 그럼 더 늦어져도 되겠네?"
"음?"
"좀더 있다 가지 않을래? 너랑 아침까지 있고 싶어."
테오도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노골적인 대답 대신 운전대를 쥔 채 몸을 기울여 모니카의 진주빛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벌써부터 참기 힘들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모니카는 테오도르의 손을 잡고 뒷문으로 이끌었다. "조용히, 살짝 들어와. 살짝." 모니카의 목덜미에서 느껴지던 향이 방 전체에 은은하게 가득해서, 테오도르는 몇번이나 심호흡을 해야 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작게 웃으며 끌어안고 오랫동안 키스했다. 그때마다 몸속 깊은 곳에 금색 불이 타오르듯 테오도르에게 조그마한 환희가 퍼져나갔다. 사랑스러움, 안전한 느낌,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완전해지는 자기자신.
모니카와 꼭 껴안고 침대 위로 쓰러지며 테오도르는 확신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그녀와 있으면 삭막한 집도, 하인리히 따위도 전부 머릿속에서 버릴 수 있었다. 아침이 올 때까지 그는 조금도 하인리히에 대해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하인리히에게 마리화나 같은 걸까. 내게 모니카는.'
희미한 통증 같은 생각. 그러나 모니카의 부드러운 팔이 목에 휘감겼고 곧 테오도르는 그녀 외에는 전부 잊어버렸다. 간신히 열여섯살 평범한 소년으로 돌아가, 오직 그녀와 그만 있었다, 조그마한 방에.
[2017. 8. 29.] astor.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