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_도 뻘개그
모님 리퀘로 썼던 군_도 조__윤 육아물 뻘개그입니다.
아이가 누구를 닮았는지는 모르겠다. 더럽고 지저분한 포대에 안겨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찡그려 울어대는 그 얼굴은 자신의 손으로 목을 조르려 했던 그 갓난쟁이의 얼굴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한번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제수씨란 여자의 얼굴이었을 지도 모른다. 정말로 모르겠다. 조윤은 입속으로 뇌까렸다. 분냄새에 싸여 여자들 손을 이리저리 타며 인형취급 받았을 어떤 얼굴은 애써 겹쳐보지 않으려 하며. 정말로 나는 모르겠구나.
그러나 조윤이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그는 이 목청좋게 울어대는 이 조그맣고 여린 목에 칼을 들이댈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허락하고 내어주리라는 것을. 오직 그 사실만 알았고, 그리고 또 충분했다.
또한 그가 새로 알아야 할 사실도 있었다.
…총각이 애 키우는 게 결코 만만할 리 없다는 걸.
"아이고, 도련님!"
몸종 동수의 높은 고함이 울려퍼지자 조윤은 미간 사이를 찌푸리며 장부를 내려놓았다. 서안을 다리로 밀며 일어나, 세겹 장지를 떨치듯 밀고 나아가 나무라는 소리를 냈다.
"무슨 소란이냐. 아버님 거처에 들리지 않게 조심하라 일렀지 않느냐.”
"하지만 나으리, 도련님... 도련님께서!"
복도로 나온 조윤은 움찔 했다. 버선발을 스윽 들어올리니 축축하게 젖었다. 복도는 온통 물바다에, 동수는 물벼락을 맞고 젖은 꼴로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하고 있었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소악귀의 포효 소리….
"갸아아아아아!!!!"
홀랑 벗은 두살 짜리가 얼마 있지도 않은 머리칼을 봉두난발을 한 채 복날 목줄 끊고 봉기한 동네 매친 개처럼 지랄방아를 떨치며 사방팔방 뛰댕기고 있었다. 너무 자유로우신 짧은 다리 사이로 조씨 가문의 대를 이을 풋고추 꼬치가 달랑거리는 꼴을 정면으로 목도한 조윤은 순간 휘청거렸다. 내가 나주 갑부 조씨 가문 조공잔데… 심란함을 이기지 못해 동수의 멱살을 대번에 틀어쥐고 호통을 쳤다.
"네이놈! 도령의 시중을 맡겼더니 애를 무슨 동네... 무슨 강아지 꼴로 날뛰게 만드느냐!”
양반가에서 뼈가 굵은 체면상 중요한 단어는 아슬아슬하게 삐- 하고 처리할 수 있었다. 동수는 진짜진짜 억울한 표정을 다시 지으며 소리쳤다.
"하오나 나으리, 도련님이 너무 건강하여 원기가 넘치시는 나머지...!"
"쁘아아아아아!"
동수가 덥석 잡으려는 순간 아이는 동수의 이마를 고사리손으로 마구 치고 갓을 훌떡 벗겨 상투를 잡아뽑을 듯 움켜쥐었다. "으악, 도련님! 내 머리털!" 무자비한 공격 후 발가벗은 몸으로 빠져나온 아이는 이제 온몸으로 조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순간 반사적으로 조윤은 온몸에서 물을 뿌려대는 소악귀 앞에 진심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그는 우아하게 소맷자락을 휙 치켜 우다다닥 달겨드는 아이를 펄럭 하고 비껴보냈다.
"으악, 도련님!"
조윤이 깎아내린 듯한 몸동작으로 반바퀴 빙그르르 돌아 휘날린 소맷자락을 그림처럼 갈무리하는 동안, 홀딱 벗은 아이는 그대로 돌진하여 벽에 쿵 부딪쳤다. 그리고 발랑 누웠다. 그제야 놀란 조윤은 자기 대신 서라운드 돌비 시스템으로 질러주는 동수의 비명을 깔고 급히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괜찮으냐."
아이는 이마에 빨갛게 조롱박만한 혹을 매단 채 말똥말똥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어이쿠. 포동포동한 손을 뻗어 조윤의 상투를 움켜쥐려 했다. 간발의 차이로 수지부모한 소중한 머리털을 지켜낸 조윤은 심장이 벌렁벌렁한 채 아이를 쳐다보았다. 운다, 운다, 운다, 빼액 하고 울거다. 저 소악귀가 혼자 34인조 종묘제례악 풀코스로 울어 제낀다! 조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뒤에서 동수가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리는 모습이 느리게 스쳐지나갔다. 소매 속으로 들어간 조윤의 손이 숨겼던 비장의 무기를 꺼내어...!
"으ㅇ...!"
내 어디 한번 이놈의 집구석 처맛자락을 무너뜨려 보지 라는 기세로 벌어지던 아이의 입안에 네모진 것이 스윽 빨려 들어갔다. 급소를 찔렀다, 해냈다는 손끝 느낌이 조윤의 우아하게 드리워진 어깨 전체로 퍼져나갔다. 엿이었다. 침범벅에 끈적끈적한 엿을 입안에 문 채 아이는 바둥거리며 쪽쪽 빨기 시작했다. 이렇게하여 또 한번 집안의 평화를 지켰구나. 엿을 손에 쥔 채 조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령."
"앙와우아아야왕왕."
"......도령. 그만 먹거라."
"우왕므양우와냥뭉먕."
"도령, 그건 네 삼촌 손이란 말이다.”
조윤은 벌떡 일어나 자신의 손까지 입안에 앙 물고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를 좌우로 흔들어댔다. "동수야, 뭘 하느냐!" 두 사람이 한껏 잡아당겨서야 아이를 조윤의 손과 엿에서 떼어낼 수 있었다. 아이는 그야말로 나라 잃은 표정으로 빈 입안을 안타깝게 다시더니 또다시 '내가 이 집안을 망하게 할겨' 기세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흠칫한 조윤을 향해 아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오!"
미... 밉다고? 순간 조윤은 보이지 않는 주먹에 후려맞은 듯 비틀거렸다. 생산된 지 2년차 병기는 계속해서 후속타를 펑펑 쏘아댔다.
"내꺼! 죠!"
"납빠!"
"미오! 내꺼야! 나빠! 너 시러!"
콱 콱 콱 콱, 고슴도치처럼 가슴에 보이지 않는 화살을 있는대로 후려맞고 조윤은 휘청휘청거렸다.
"내가... 내가 널 어떻게 구해와서 어떻게 키웠거늘.... 그깟 엿 하나 때문에….”
"미오! 내꺼 내나!"
"어디서 이렇게 못 되어먹은 말을…. 네 피에 흐르는 조씨 양반가의 기품도 잃었느냐. 그래, 그놈의 도적 떼들이 문제로구나. 그것들이 귀한 널 이렇게 망쳐놓았구나. 내 가문의 명예를 걸고 널 반드시...!"
"몰라! 바보! 부랄 엄는 놈!"
아아, 무릇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도적 패거리끼리 히히덕거리며 내뱉던 욕이 이렇게 돌아와서 애꿎은 조씨 가문 나으리에게 비수가 되어 꽂힐 줄이야. 우리 애, 어떻게 키운 우리 애인데. 파들파들 떨며 털썩 무릎을 꿇는 조윤을 두고 아이가 최후의 치명타를 꽂았다.
"도찌 삼춘 데꾸 와! 도찌 삼추우우우운! 누가 나 개롭혀어어어!"
백짓장 같은 얼굴에 벌겋게 충혈된 눈을 뜨고 조윤은 이를 부득 갈았다. 눈앞에 이미 기억도 나지 않아 대충 눈 두개 코 하나 입 하나 붙은 채 하하하하 하고 웃는 산도적놈 얼굴이 아른거렸다. 이놈 죽인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회를 쳐서 그놈 간을 술상에 올려 맛깔지게 씹을 것이다. 그렇게 파들거리는 조윤의 등을 와작 밟고 또다시 소악귀가 무한질주를 시작했다.
"갸아아아아아!"
내가 나주 갑부 조씨 가문 조공잔데… 그리하여 드디어 조윤은 양반의 체면으로 봉인하고 있던 그 한마디를 처절하게 악문 입술 밖으로 내뱉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 똥강아지…….”
결국 자유롭게 탈출한 똥개새끼는 체포되어 구금형을 받았다. 조윤은 하얀 얼굴 위에 있는 대로 눈썹을 찡그리고 장부를 들어 한획을 그리다가, 뒤를 돌아보다가, 다시 한획을 그리기를 반복하였다. 문고리에는 비단을 꼬아 길게 드리웠고 그 끝은 아이의 허리에 단단히 동여매 있었다. 아이는 한동안 바둥거리면서 비단끈을 물고 빨고 침범벅으로 만들며 반란을 획책하다가 지쳤는지 지금은 딩굴 드러누워 칭얼대며 조윤을 쳐다보고 있다.
"얌전히 있거라. 일을 마칠 때까지 착하게 굴면 내 상으로 포로로(佈勞勞) 공자를 보여줄 터이다."
조윤은 몹시 신경이 쓰였지만 다시 한번 정갈하게 장부에 붓을 골라 글을 적어넣었다.
착각일까. 포로로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멎었다. 미간에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가느다란 윗입술을 한번 꾹 물더니 무서운 기세로 아이를 불렀다.
"도령!"
"가아?"
"내가 더 좋으냐, 포로로가 더 좋으...."
말을 마칠 틈도 없이 천장 뚫을 기세로 맹렬한 포효가 울려퍼졌다.
"포!로!로!"
아이는 데굴데굴 구르며 바닥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고 허공을 발로 차며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포!로!로! 포!로!로! 포로로 내나! 포로로 죠!"
이눔의 똥개.... 조윤은 홱 돌아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를 염불처럼 외며 마치 폭포가에서 수행하는 마냥 우아하고 평온하게 장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포!로!로!" "포!로!로!" 그러나 세운 붓끝이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침내 종이 위에 퍽 하고 붓을 짓뭉개며 조윤은 매서웁게 성질을 부렸다.
"조용히 해야 보여준다고 하지 않았더냐. 삼촌은 네게 물려줄 땅마지기 때문에 바쁘단 말이다.”
"뽀!로!로! 뽀!로!로!"
"내 이 포로로인지 뭔지 씨를 말려 버리겠다. 사람이면 잡아다 목을 쳤을 터인데. 그 몹쓸 것을 만든 화쟁이들을 잡아다 주리를 틀고 전답을 빼앗아다 상추를 심고 콩도 심고, 화책은 전부 모아다가 불을 질러 돼지를 구워서...!"
전에 없이 자기자신을 잃고 흥분하여 나즉나즉하게 화를 내다 말고 조윤은 문득 아이를 보았다. 비단끈에 매인 채 퍼질러앉아 아이는 큼지막한 눈으로 소똥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조윤을 보고 있었다.
"포로로... 쥬거?"
조윤은 말문이 막혔다. 그래,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어. 네 녀석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식사도 제때 못 하고 바싹바싹 말라가는 총각 삼촌이 잘못했네. 한숨을 푹푹 쉬면서 조윤은 평생 탓해온 자신의 팔자를 전혀 다른 의미로 탓했다. 내가 대체 뭔 업보를 지어서.
저 얼굴은 누구를 닮았을까. 자신의 팔로 한번 안아보는 것도 허락받지 못 했던 저애 아비일까, 혼인에도 참석할 수 없어 얼굴 한번 못 본 저애 어미일까. 여자들 노리개를 물고 치맛폭 속에 눕던 어린 자신일까. 아이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삼촌 밉다고 난리난리 생떼 부리던 얼굴은 어디 가고 포동한 볼에 눈물을 퐁퐁 떨구고 있었다. 조윤은 무릎걸음으로 한번에 다가가 아이의 허리에 동여맨 비단끈을 풀었다.
"아니, 안 죽는다. 싫다면 안 죽이마. 자, 답답하면 이걸 풀어줄 테니 얌전히 있어야... 헉?"
참으로 학습능력이 없는 조윤이었다. 그리하여 뒷켠에서 수근거리는 하인들 왈, 조카바보란 소문이 괜한 것이었으랴. 줄이 풀리자마자 아이는 그 큼직한 머리로 조윤을 향해 슈웅 날아와 들이받았다. 벽에 정면으로 박고도 멀쩡하던 돌대굴이 아니던가. 조윤이 비틀거리는 동안 아이는 서안 위로 기어올라가 장부를 밟고 위아래로 신이 나 들뛰려 했다. 조윤은 나이도 젊은데 슬슬 땡겨오는 뒷목을 꾹꾹 누르며 참을인을 새기고 또 되새겼다. 내가 왜. 내가 대체 왜. 소돼지면 정말 잡아라도 먹지. 조윤은 겨우 덥석 아이를 잡아들어 또다시 한숨을 쉰 후, 양반다리를 한 후 그 위에 아이를 앉혔다.
"이놈의 똥강... 아니다. 정말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구나."
응, 그래도 난 아닐거야. 설마 나도 이랬겠어. 그건 절대 아니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조윤은 바둥거리는 아이를 왼팔에 안았다. 아이가 궁둥이를 들썩거리자 ‘어허’ 하고 다시 품에 추켰다. 이 상태로 오줌이라도 싸면 매달아 버리겠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아버리고 말 테다. 조윤은 오른손으로 붓을 들어, 이놈의 똥강아지가 여기에 흥미를 좀 가져서 얌전해주기만을 헛되이 바라며 장부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자, 보거라. 땅문서는 보통 땅의 위치와 총 너비, 자라는 작물종, 수확량을 적고 그 다음에 대대로 내려온 소유자 명을 이렇게 적느니라. 소유주가 바뀌면... 도령!"
울음을 그치고 초롱초롱한 눈이 된 아이가 제 삼촌을 올려다보더니 눈을 맞추며 해맑게 웃었다. 다음 순간, 품안의 소악귀가 해방되었다! 뛰쳐나온 아이는 움직이는 붓을 노리고 서안 위로 날아오르더니 그대로! 벼루를 습격했다.
사방팔방에 먹물이 튀고 아이의 하얀 저고리도, 조윤의 연하늘색 도포 앞자락도 온통 검은 점박이투성이가 됐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아이는 깔깔 소리내 웃으며 박수를 치는데, 그 고사리 같은 손도 이미 까마귀처럼 깜댕이 된 지라. "안돼!" 하고 조윤이 퍼뜩 놀라 장부와 땅문서를 와르륵 치우자마자 왈카닥! 손으로 힘주어 서안 위를 내리찍었다. 미처 피신 못한 불쌍한 병서와 시선집에 온통 단풍잎 같은 새까만 손자국이 다닥다닥 찍혀버렸다.
당황한 조윤이 아이를 거꾸로 들쳐업어도 아랑곳않고 아이는 이번에는 삼촌의 소매자락과 어깨를 다다닥! 북치듯 신명나게 후려쳐댔다. 개고양이가 뛰놀고 간 것처럼 까만 손꽃이 여기저기 피었다. 그러면서도 다리는 발버둥쳐서 서안을 아예 통째로 뒤집어 엎고 말았다. 옥으로 된 문진이 날고 벼루가 솟구치며 병풍이니 보료에 까만 침을 뱉고 귀한 문서가 눈처럼 나부끼는 와중에 조윤은 그의 인생에 다시 없었을 정도로 놀라고 당황하고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아강아!"
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또 까르륵 웃으며 조윤의 배를 걷어찼다. 방심한 틈에 버겁게 한방 맞은 조윤은 고작 두살짜리의 발차기에 비틀거렸고(그간 누가 때려도 핍박해도 고개 뻣뻣이 들고 버티던 조윤에게 아마 두고두고 부끄럽고도 남을) 그만 똥강아지를 놓치고 말았다. 아이는 뒤집어지지도 않고 착 내려앉더니, 팔다리를 휘감는 먹물투성이 옷을 홀딱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깔깔깔깔 웃으며 또 무거운 머리부터 앞에 두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정신이 돌아온 조윤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아, 안돼!"
아이 앞에는 장지문이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대로 앞으로 돌격! 우지끈 파삭! 소리가 요란하게 난 후, 아이는 문살과 창호지를 온몸으로 뚫고 뛰쳐나갔다. 자그마한 아이 모양으로 뚫린 고급 창호지를 넋을 잃고 바라보던 조윤은 문득 자기 방 입구의 장지문은 세겹, 다름 아닌 삼중문이란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다시 한번 처절한 부르짖음이 고요한 복도에 울려퍼졌다.
"안된다!"
그리고 우지끈 파삭, 우지끈 파삭. 두번 더 소악귀의 소리가.
삼중으로 휘잉 하고 뚫린 구녕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조윤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무서운 사실을 퍼뜩 깨닫고야 말았다. 저 방향은 아버님 안채인데. 몹시 다급해진 그는 일각을 다투며 체면이고 뭐고 다 저버린 채 자신도 창호를 뚫고 뒤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섰거라!"
반들반들한 마루를 따라 깔깔거리며 달아나는 아이의 발가벗은 몸뚱이가 보였다. 문득 다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락거리며 날리던 흰 종이와 흩뿌려지던 먹물. 이를 갈듯이 꽉 물고 조윤은 생각했다. 아, 분명 저 아이는 날 닮지 않았다. 기생집에서 노리개를 가지고 놀던 아이의 맑고 빈 듯한 눈망울과는 다르다. 굳게 다물어져 있던 조윤의 입술에서 흐릿한 웃음이 비어져나왔다.
그렇지. 다름아닌 이 집안의, 조씨 가문의 진짜 적자인 것을.
머리를 푸르스름하게 박박 깎은 건장한 남자가 발을 쿵 굴렀다.
"그려, 사람 죽이는 맛이 쏠쏠하더냐?"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팔안에 안고, 묵직한 무게를 저리도록 느끼며 조윤은 매서운 눈빛을 잃지 않았다. 발끝을 휘이 둘러 검을 뽑을 자세를 갖추고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그자는 조윤이 안고 있는 아이를 뒤늦게 발견하더니 갑자기 표정이 달라졌다. 너도 알겠느냐. 조윤은 보란 듯이 포대기를 그자를 향해 기울이며 진심 한톨 담기지 않은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배운 것 없는 천한 놈이지만 이 아이를 2년 간 돌봐준 사례는 해야겠군. 그리고 없어져 줘야겠다. 더러운 도적놈들 따위 이 아이의 앞으로 인생에 필요없...."
도치의 눈이 흡뜨이며 형형한 빛을 내뿜었다. 입에서 침을 튀기며 그가 절절하게 부르짖었다.
"어이구, 우리 떡쇠야아아아아아아!!"
그 순간 조윤은 또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뒷목이 확 땡기며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뭐. 방금 뭐라 하였느냐.”
“떡쇠야, 삼춘이다! 도치 삼춘이 구하러 왔으야! 으어어 으허어엉, 우리 떡쇠, 저런 개놈시키한테 을매나 구박받고 모질게 고생했을꼬!”
순간 눈앞을 스쳐가는 수모의 나날들. 도포에 아이가 오줌을 싸고 발가벗고 뛰놀다 혼자 자빠져서 미오! 미오!를 부르짖으며 섧게 울고, 조윤의 깨끗이 닦은 안경에 손자국을 버덕버덕 내고, 잠자는 조윤의 명치 위로 머리부터 떨어지고, 밥먹기 싫다고 조윤의 새로 맞춘 순백색 도포에 밥상을 뒤엎은 채 떼굴떼굴 구르며 울고…. 갑자기 순식간에 십년은 늙은 기분으로 조윤은 이를 갈았다.
"누구더러 떡쇠라느냐. 아강이다, 귀한 조씨 가문 적자 조아강이란 말이다!"
"떡쇠야, 떡쇠야으아아아, 아이구 딱한 것. 삼춘이랑 가자! 저딴놈 삼춘이 막 패부릴텡게!”
조윤의 눈에서 드디어 불이 뿜어져 나왔다.
"아강이라니까!!!"
"내 네놈 간을 내서 쇠주에 질겅질겅 씹어주마! 우리 떡쇠 내놓아라!"
"천것아, 입 다물어라. 네놈 거죽에 천하제일 조아강이라고 인을 떠 버려주마!”
그리하여 화려무쌍한 쌍칼과 장검의 난무 속에 차마 들어주기 힘든 저차원적 입씨름이 난무했으니. '너 집에 가라''너나 집에 가라''네 집 내가 불질렀지''그전에 나도 느그집 홀딱 털었지 흐흐’ 기타등등.
그로부터 2년 전, 서인의 처 정심은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을 들으며 예견한 바가 있었으니. 숨을 거두기 전 정심은 이미 그때 아이의 앞날을 안쓰러이 내다보며 장탄식을 남겼던 것이다.
<내 아가, 어쩔꼬. 네게는 아비가 셋 있는데 친부는 그렇다쳐도 남은 둘이 다 바보로구나.>
[2014. 08.02.]
— 에필로그
‘그래, 불러보거라. ‘너’가 아니라 삼촌이다. 조윤 삼촌.’
‘뱌아?’
‘윤 삼촌이라 어서 불러보래도.’
‘잉….’
‘그래, 어서.’
‘잉 삼춘.’
‘그래그래, 내가 윤 삼촌이…….’
‘도찌 삼춘 내나아아아아! 갸으아아아앙!!!’
‘……나도 수염, 길러볼까.’
그리고 삼일이 지나도 수염은커녕 털 한터럭도 안 자라 맨들맨들하여 슬픈 짐승 조윤이었다 한다.
— 다리 저는 몸종 이름은 몰라서 대충 아무거나. 아이 이름은 아강이라고 어디선가 얼핏 본 미확인 정보로 그렇게 붙였습니다.
— 최종 대치 장면에서 조윤이 안고 있는 아이에 도치가 관심 한톨 안 보이는게 황당해서 저렇게 넣어봤습니다.